
어제는 JPMorgan Kinexys부터 Goldman Sachs, BNY Mellon까지 월스트리트 대형 금융사들의 토큰화 전쟁을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그 전쟁터의 규칙 자체를 새로 쓴 법안 — GENIUS Act를 해부하고, EU·아시아와 비교합니다.
본 글은 「토큰북: 금융IT 20년차의 디지털 원화 관찰일지」 24일 연재 18회차입니다.
본 글은 공개된 보도·자료만을 바탕으로 한 일반 독자용 분석이며, 어떤 기관의 내부 정보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왜 지금 ‘규제’를 비교해야 하는가
17화까지 우리는 BlackRock, JPMorgan 같은 거대 금융사가 토큰화에 뛰어드는 현장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 플레이어들이 수십억 달러를 베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규칙이 정해졌다’는 확신입니다.
2024년까지만 해도 미국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규제 공백” 상태였습니다. 시가총액 2,000억 달러가 넘는 시장이 연방 차원의 전용법 없이 운영됐던 것입니다. GENIUS Act는 이 공백을 메운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금융IT 20년차의 시각으로 보면, 기술보다 규제가 먼저 정해질 때 시장이 비로소 ‘인프라 모드’로 전환합니다. 지금 글로벌 토큰화 시장이 정확히 그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GENIUS Act — 미국이 선택한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뼈대
GENIUS Act(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는 2025년 미국 상원에서 초당적 지지로 통과된 스테이블코인 전용 연방법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을 ‘지급결제 수단’으로 정의하고, 발행·운영·감독의 전 과정에 법적 틀을 씌웠습니다 (CoinDesk, 2025년 5월).
핵심 골자 4가지
첫째, 이중 감독 경로(Dual-Track). 발행 규모 100억 달러 이상은 연방 감독기관(OCC·연준 등)이, 미만은 주(州) 감독기관이 관할합니다. 대형 발행사는 은행 수준의 감독을 받고, 소형 혁신 기업은 주 단위에서 유연하게 진입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둘째, 준비금 1대1 + 고품질 유동자산 의무. 발행된 스테이블코인과 동일한 액면의 준비금을 보유해야 하며, 허용 자산은 미국 국채, FDIC 보험 예금, 연방준비은행 예치금, 단기 환매조건부채권(RP) 등으로 한정됩니다. ‘안전자산으로만 뒷받침하라’는 원칙입니다.
셋째, 월간 준비금 증명. 등록 회계법인이 매월 준비금 구성과 규모를 검증한 보고서를 공시해야 합니다. 분기나 반기가 아닌 매월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2022년 테라-루나 사태에서 드러난 ‘준비금 불투명성’에 대한 직접적 대응으로 읽힙니다.
넷째,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사실상 퇴출. 자체 발행 토큰을 담보로 가치를 유지하는 내생적 담보(endogenous collateral) 방식이 금지됩니다. 테라-루나식 설계는 더 이상 미국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될 수 없습니다.
해외 발행자 조항 — 사실상 글로벌 표준 선언
가장 파급력이 큰 조항은 해외 발행자 규정입니다. 미국 내에서 유통되는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도 GENIUS Act와 동등한 수준의 준비금·공시·소비자 보호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사실상 “미국 시장에 접근하려면 우리 규칙을 따르라”는 선언입니다.
이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50% 이상이 달러 페그인 현실을 감안하면, GENIUS Act가 단순한 국내법을 넘어 사실상의 글로벌 기준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Galaxy Research, 2025년 6월).
시장 반응 — Circle과 Tether의 엇갈린 위치
GENIUS Act 통과 이후 시장 반응은 명확히 갈렸습니다. Circle(USDC 발행사)은 이미 미국 내 규제 준수 체계를 갖추고 있어 법안의 최대 수혜자로 평가됩니다. 반면 해외 법인 구조의 Tether(USDT)는 해외 발행자 조항에 따라 추가적인 준수 부담을 안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GENIUS Act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경쟁 구도 자체를 재편할 수 있는 규제 도구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EU MiCA — 먼저 움직인 유럽, 그 명과 암
유럽연합은 미국보다 먼저 움직였습니다. MiCA(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는 2023년 채택되어 스테이블코인 관련 조항이 2024년 6월부터 시행된 세계 최초의 포괄적 가상자산 규제입니다 (European Commission 공식 자료, 2023년).
EMT와 ART — 이중 분류 체계
MiCA는 스테이블코인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 EMT(E-Money Token): 단일 법정통화에 페그된 토큰. 기존 전자화폐와 유사한 개념이며, EU 인가 전자화폐기관 또는 은행만 발행 가능.
- ART(Asset-Referenced Token): 복수의 법정통화, 상품, 또는 가상자산 조합을 참조하는 토큰. 더 엄격한 인가 요건과 자기자본 요건이 적용.
GENIUS Act가 ‘스테이블코인’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은 것과 달리, MiCA는 참조 자산의 성격에 따라 규제 강도를 달리한 점이 특징입니다.
거래량 상한 — 달러 패권에 대한 방어?
MiCA의 가장 논쟁적인 조항은 비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의 일일 거래량 상한입니다. 일일 100만 건 또는 2억 유로를 초과하면 발행사가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 조항은 표면적으로는 금융 안정성 보호 장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USDT·USDC 같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EU 내 확산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유로존의 통화 주권을 디지털 영역에서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다만 이 제한이 EU 내 DeFi(탈중앙 금융) 생태계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Coindesk, 2024년 8월).
아시아 3강 — 각자의 길을 가는 규제 경쟁
아시아에서는 일본·싱가포르·홍콩이 서로 다른 전략으로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일본 — 세계 최초의 법제화, 은행 중심 모델
일본은 2023년 6월 개정 자금결제법으로 세계 최초로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정의와 발행 요건을 확정했습니다 (일본 금융청(FSA) 공식 발표, 2023년). 발행 주체를 은행·신탁회사·자금이동업자로 한정하고, 이용자 자산은 별도 신탁으로 보전하는 구조입니다.
특징적인 점은 ‘발행’과 ‘유통’을 분리한 것입니다. 발행은 금융기관만, 유통(중개)은 별도 등록업자가 담당합니다. 기존 은행 시스템에 스테이블코인을 편입시키려는 ‘은행 중심 모델’의 전형입니다.
싱가포르 — MAS의 실용적 프레임워크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2023년 8월 단일통화 스테이블코인(SCS) 프레임워크를 발표했습니다 (MAS 공식 보도, 2023년 8월). 규제 대상을 ‘싱가포르 달러 또는 G10 통화에 페그된 스테이블코인’으로 명확히 좁혀 실효성을 극대화한 점이 특징입니다.
발행 자격은 은행 또는 대형 결제기관(Major Payment Institution)으로 한정하고, 준비금은 저위험 자산(현금, 국채, 단기 국채)으로 보유해야 합니다. MAS 감독 하에 SCS 인증을 받은 토큰만 ‘싱가포르 규제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라벨을 사용할 수 있어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설계입니다.
홍콩 — 동서 교차로의 허브 전략
홍콩은 2025년 스테이블코인 조례(Stablecoins Bill)를 입법회에서 통과시키며 아시아 가상자산 허브 경쟁에 본격 합류했습니다 (HKMA 보도, 2025년). 법정통화 참조 스테이블코인(FRS) 발행자에게 HKMA 인가를 의무화하고, 1대1 고품질 자산 준비금·정기 공시·상환 보장 등을 규정합니다.
홍콩의 전략적 의도는 분명합니다. 중국 본토가 가상자산 거래를 엄격히 제한하는 상황에서, 홍콩이 중국 자본과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규제된 중간지대’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입니다.

3대 권역 핵심 비교표
| 항목 | 미국 GENIUS Act | EU MiCA | 일본 자금결제법 | 싱가포르 MAS | 홍콩 조례 |
|---|---|---|---|---|---|
| 시행 시점 | 2025년 | 2024년 6월 | 2023년 6월 | 2023년 8월 | 2025년 |
| 발행자 자격 | 연방/주 인가 금융기관 | 인가 전자화폐기관·은행 | 은행·신탁·자금이동업자 | 은행·대형결제기관 | HKMA 인가 |
| 준비금 | 1:1 고품질 유동자산 | 1:1 (EMT: 은행 예치 30%↑) | 신탁 보전 | 1:1 저위험 자산 | 1:1 고품질 자산 |
| 공시 주기 | 월간 | 분기 이상 | 정기 | 월간 | 정기 |
| 알고리즘형 | 금지 | 사실상 불가 | 규제 대상 외 | 규제 대상 외 | 금지 |
| 해외 발행자 | 동등 기준 충족 시 허용 | EU 내 영업 시 인가 필수 | 등록 필수 | 비인증 SCS 유통 제한 | 인가 필수 |
| 핵심 특징 | 연방/주 이중 트랙 | EMT/ART 구분, 거래량 상한 | 발행-유통 분리 | 단일통화 페그만 규제 | 아시아 허브 지향 |
수렴하는 세 가지 기둥
미국·EU·아시아 5개국의 규제를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입니다. 세부 설계는 다르지만, 핵심 원칙은 수렴하고 있습니다.
- 기둥 1 — 인가된 발행자: 모든 권역이 ‘아무나 발행 불가’라는 원칙에 합의. 은행 또는 은행 수준의 감독을 받는 기관만 발행 허용.
- 기둥 2 — 1대1 고품질 준비금: 국채·현금·중앙은행 예치금 등 안전자산으로 뒷받침. ‘페그가 깨지면 안 된다’는 공통 인식.
- 기둥 3 — 정기 공시와 투명성: 준비금 구성·규모를 정기적으로 외부에 증명. ‘자체 선언이 아닌 제3자 검증’ 요구.
이 수렴은 우연이 아닙니다. 2022년 테라-루나 사태, FTX 파산 등 일련의 사건이 전 세계 규제당국에 동일한 교훈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담보 없는 약속은 무너진다’는 교훈 위에 각국이 자국 사정에 맞는 법적 프레임워크를 올린 것입니다.

한국은 어디쯤 서 있나
8화에서 다뤘듯이, 한국은 아직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10화에서 살펴본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가상자산 전반의 규제 틀을 잡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 전용 조항은 별도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GENIUS Act가 한국에 시사하는 점은 세 가지입니다:
- 시사점 1 — ‘누가 발행하는가’의 답: 은행? 전자금융업자? 전용 라이선스? 한국도 발행 주체에 대한 법적 결정이 필요합니다.
- 시사점 2 — 준비금 규칙의 구체화: 한국 국채·원화 예금 등 국내 고품질 자산을 준비금으로 활용하는 설계가 전제돼야 합니다.
- 시사점 3 — 글로벌 호환성: GENIUS Act의 해외 발행자 조항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발행 스테이블코인이 인정받으려면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이 핵심입니다.
글로벌 주요국이 이미 답을 내놓은 세 가지 질문 — ‘누가 발행하고, 무엇으로 뒷받침하고, 어떻게 증명하는가’ — 에 대해 한국도 자신의 답을 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속도가 곧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구간입니다.
정리 — 규제가 인프라를 만든다
2025~2026년은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글로벌 수렴기’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GENIUS Act는 미국 국내법이지만, 달러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지배적 위치 때문에 사실상 글로벌 기준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U MiCA는 유로존의 통화 주권을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했고, 아시아 3강은 각자의 금융 생태계에 맞는 규제 설계를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17화에서 본 월스트리트의 토큰화 전쟁이 ‘기업의 선택’이었다면, 오늘 살펴본 규제 프레임워크는 ‘국가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금융의 역사는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 규칙이 정해진 후에야 진짜 인프라 투자가 시작된다는 것을.
내일은 싱가포르 Project Guardian과 홍콩 Project Ensemble — 아시아 두 도시의 토큰화 실험 현장을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본 글은 공개된 보도·자료만을 바탕으로 한 일반 독자용 분석이며, 어떤 기관의 내부 정보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본 글의 내용은 투자 권유나 자문이 아닙니다. 가상자산·토큰증권·금융상품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 판단과 자격을 갖춘 전문가(투자권유대행인·세무사·변호사 등)와의 상담을 거쳐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이미지는 Leonardo AI 로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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