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이야기: 맥락이라는 무기, 그 다음은
지난 8화에서 AI가 영원히 읽지 못하는 ‘행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맥락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명시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것을 파악하는 능력이죠. 오늘은 그 연장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봅니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파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 — 흔히 ‘창의’라 부르는 것 — 에서 AI와 사람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고백 하나. 저도 처음엔 AI가 창의적인 일을 대체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코드를 짜주고, 문장을 다듬어주고, 디자인 시안까지 뽑아주는 걸 보면서요. 그런데 현장에서 2년 넘게 AI와 함께 일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AI가 잘하는 ‘창의’와 사람만 할 수 있는 ‘창의’는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행위라는 것. 수학에서 빌려온 두 단어로 그 차이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보간과 외삽: 수학에서 빌려온 가장 직관적인 비유
수학에서 보간(interpolation)이란, 이미 알려진 데이터 포인트들 사이의 빈 곳을 채우는 것입니다. 점 A와 점 B 사이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 넣는 거죠. 반면 외삽(extrapolation)은 알려진 데이터의 범위 바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점 A부터 점 E까지의 패턴을 보고, 아직 관측되지 않은 점 F, 점 G의 위치를 추정하는 겁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보간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빈 공간을 다루고, 외삽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방향을 다룹니다. 보간이 틀릴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양쪽 끝의 정보가 제약 조건으로 작동하니까요. 하지만 외삽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합니다. 과거의 패턴이 미래에도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이 구분이 왜 중요하냐고요? AI가 하는 거의 모든 ‘창의적’ 작업이 사실은 보간이기 때문입니다.
AI가 하는 ‘창의’의 실체: 초고속 보간 기계
대규모 언어 모델이 글을 쓸 때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학습 데이터에 존재하는 수십억 개의 텍스트 패턴을 기반으로, 주어진 맥락에서 가장 적절한 다음 단어를 예측합니다. ‘가장 적절한’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보간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패턴들의 가중 평균, 혹은 그 패턴들이 형성하는 공간 안에서의 최적 위치를 찾는 것이죠.
이미지 생성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린 한국의 봄 풍경”이라는 프롬프트를 주면, AI는 ‘인상주의 화풍’이라는 스타일 벡터와 ‘한국의 봄 풍경’이라는 콘텐츠 벡터 사이의 어딘가에 새 이미지를 배치합니다. 결과물은 분명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알려진 스타일과 이미 알려진 대상의 조합 — 다시 말해 보간입니다.
보간이 나쁜 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보간 능력이 대단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엄청납니다. 인간이 수천 개의 참고 자료를 동시에 고려해서 그 사이의 최적점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AI는 그걸 초 단위로 해냅니다. 업무 현장에서 이 능력은 압도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옵니다.
제가 일하는 금융IT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코드 패턴을 분석해서 새로운 모듈의 뼈대를 잡거나, 수백 개의 테스트 케이스 사이에서 빠진 경계 조건을 찾아내거나, 기존 API 문서들의 스타일을 학습해서 새 엔드포인트의 문서 초안을 만드는 것. 이 모든 게 보간이고, AI가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해냅니다.
문제는 보간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외삽의 순간: 현장에서 목격한 세 가지 사례
사례 1: “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
몇 년 전, 저희 팀이 운영하던 챗봇이 있었습니다. 응답 정확도 94%, 사용자 만족도 조사 4.2/5.0. 숫자로 보면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AI에게 “이 챗봇의 개선점을 찾아줘”라고 물으면, 응답 속도를 0.3초 줄인다든지, 특정 카테고리의 정확도를 97%로 올린다든지 하는 — 기존 지표 안에서의 개선점, 즉 보간적 제안만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팀의 한 주니어 개발자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혹시 우리 챗봇에 아예 질문을 안 하는 사용자가 있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은 왜 안 하는 걸까요?” 이 질문은 기존 데이터에 없는 것을 물었습니다. 응답한 사용자의 만족도가 아니라, 응답 자체를 포기한 사용자의 존재를 상상한 것이죠.
조사해 보니 실제로 로그인 후 챗봇 화면까지 왔다가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고 이탈하는 비율이 35%에 달했습니다. 그들이 ‘질문을 안 한’ 게 아니라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이 발견은 UI 전면 개편으로 이어졌고, 실질적 사용률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렸습니다.
AI는 이 발견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챗봇을 안 쓰는 사람”의 데이터는 챗봇 로그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있는 데이터의 바깥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외삽입니다.
사례 2: “유사한 것들을 연결해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순간”
금융 시스템 장애 대응을 하다 보면, 간혹 기존의 어떤 매뉴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한번은 특정 시간대에만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지연 현상이 있었는데, 모니터링 대시보드의 어떤 지표도 임계값을 넘지 않았습니다. AI 분석 도구에 로그를 넣어봐도 “이상 없음”만 반복했죠.
결국 문제를 찾아낸 건 한 시니어 엔지니어였는데, 그 사람이 한 것은 놀라웠습니다.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의 경험 — 예전에 취미로 했던 아마추어 무선 통신에서 겪었던 ‘페이딩(fading)’ 현상을 떠올린 겁니다. 특정 시간대에 전파가 약해지는 패턴과, 우리 시스템의 지연 패턴이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는 직감이었죠. 실제로 원인은 같은 시간대에 배치 작업을 돌리는 인접 시스템의 네트워크 버스트가 간섭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연결은 AI가 만들어낼 수 없었습니다. ‘아마추어 무선의 페이딩’과 ‘금융 시스템 네트워크 지연’을 같은 훈련 데이터 안에서 연결한 패턴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완전히 다른 도메인의 경험을 아날로지로 끌어오는 것 — 이것도 외삽입니다.
사례 3: “기존 규칙을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판단”

시스템 설계에는 ‘정석’이 있습니다. 모범 사례(best practice)라고 부르는 것들이죠. AI는 이 정석들의 종합 백과사전 같습니다.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에서 서비스 간 통신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수백 개의 참고 사례에서 추출한 최적의 패턴을 알려줍니다. 완벽한 보간이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가끔 정석을 깨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한 프로젝트에서 모든 ‘올바른’ 설계 원칙이 가리키는 방향과 정반대로 가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교과서적으로는 비동기 이벤트 기반이 맞았지만, 팀의 규모, 운영 역량, 비즈니스의 특수한 타이밍 요구사항을 종합하면 오히려 단순한 동기 호출이 나았습니다. AI에게 물으면 “이건 안티패턴입니다”라고 경고했지만, 결과적으로 3년간 단 한 번의 장애도 없이 운영됐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규칙을 깨는 게 옳다’는 판단은 보간의 결과가 아닙니다. 기존 데이터(=정석)가 가리키는 방향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니까요. 이것이 외삽입니다.
왜 AI는 외삽을 못 하는가: 구조적 한계
“AI도 학습하면 외삽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기술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복잡해지지만, 핵심만 짚어보겠습니다.
한계 1: 분포 내(in-distribution) vs 분포 외(out-of-distribution)
현재의 AI 모델은 학습 데이터의 분포(distribution) 안에서 동작할 때 놀라운 성능을 보입니다. 하지만 학습 시 본 적 없는 패턴 — 분포 바깥(out-of-distribution)의 입력이 들어오면 성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이건 버그가 아니라 구조적 특성입니다. 학습 데이터에서 추출한 패턴으로 예측하는 게 AI의 본질이니까요.
외삽은 정의상 분포 바깥을 다루는 행위입니다. 즉, AI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 바로 외삽이 요구되는 지점과 겹칩니다.
한계 2: 목적 함수의 부재
AI는 “다음 토큰 예측” 또는 “주어진 목적 함수의 최적화”를 위해 훈련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외삽 — 예를 들어 “지금까지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는 것” — 에는 사전에 정의된 목적 함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좋은 새로운 질문’인지를 학습 시점에 정의할 수 없으니까요.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불편함, 호기심, 미적 감각, 윤리적 직관 같은 내적 신호를 통해 “여기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방향 감각을 갖습니다. 이 방향 감각이 목적 함수 없이도 외삽을 가능하게 합니다.
한계 3: 실패의 경험이 없다
인간의 외삽 능력은 상당 부분 실패의 경험에서 옵니다. 어떤 방향이 막다른 길인지, 어떤 가정이 깨지는지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죠. AI는 학습 데이터에 담긴 타인의 실패를 ‘읽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 어딘가에 부딪혀보고 방향을 튼 경험이 없습니다.
현장에서 “감(感)으로 안다”고 말하는 시니어들의 외삽 능력은, 수십 년간 축적된 실패 경험의 결정체입니다. 이건 텍스트로 전달되지 않는 종류의 지식이라, AI의 학습 데이터에 담기기가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현실적 협업 모델: 보간은 맡기고, 외삽에 집중하기

그렇다면 실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현장에서 2년간 실험하며 정착시킨 패턴을 공유합니다.
패턴 1: AI에게 ‘빈칸 채우기’를 시키고, 사람은 ‘빈칸의 위치’를 정한다
보고서를 쓸 때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목차도 잡고, 각 섹션의 내용도 채웠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합니다:
- 사람이 “이 보고서에서 말하고 싶은 건 X인데, 기존 보고서에서는 항상 빠지던 관점 Y를 이번엔 포함하고 싶다”고 방향을 정한다 (외삽)
- AI가 그 방향에 맞는 목차를 제안하고, 각 섹션의 초안을 채운다 (보간)
- 사람이 초안을 읽으며 “이 부분은 뻔하다. 여기에 의외의 각도를 넣고 싶다”고 수정 방향을 잡는다 (외삽)
- AI가 수정된 방향에 맞게 다시 채운다 (보간)
이 사이클을 돌리면, 사람 혼자 쓸 때보다 시간은 1/3로 줄면서도, AI 혼자 쓸 때보다 깊이와 독창성은 두 배 이상 높아집니다.
패턴 2: AI의 ‘보간 지도’를 읽고, 빈 영역을 식별한다
AI에게 특정 주제에 대해 “알려진 모든 접근법을 정리해줘”라고 시키면, 기존 지식의 지도를 빠르게 그려줍니다. 이 지도를 받아보면, 뭐가 없는지가 보입니다. “이 방향은 아무도 시도 안 했네” “이 두 분야의 교차점이 비어 있네” — 이런 발견이 외삽의 출발점이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AI가 보간을 잘할수록 사람의 외삽이 수월해집니다. 지도가 촘촘할수록 빈 곳이 선명하게 드러나니까요.
패턴 3: ‘말이 안 되는’ 것을 일부러 시도하고, AI에게 정합성을 맞추게 한다
외삽은 종종 “말이 안 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됩니다. “고객 불만 처리 프로세스에 게임의 보상 시스템을 접목하면 어떨까?” 같은 것들이요. 이런 비약적 연결을 사람이 던지면, AI는 그것을 현실적으로 구현 가능한 형태로 다듬는 데 탁월합니다. 엉뚱한 아이디어의 외삽적 점프는 사람이, 그것을 실행 가능한 구체 방안으로 보간하는 것은 AI가 담당하는 겁니다.
보간 능력이 무한히 올라가면 외삽도 될까?
이 글을 읽으며 “AI 성능이 더 올라가면 결국 외삽도 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관찰로 말씀드리자면:
보간의 정밀도를 아무리 높여도, 그것은 여전히 보간입니다. 고해상도 지도가 아무리 정밀해도,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대륙을 발견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행위입니다. 패턴 인식의 정밀도를 극한까지 높이는 것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패턴을 상상하는 것 사이에는 카테고리 자체가 다른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2026년 현재의 관찰입니다. 미래에 AI의 아키텍처가 근본적으로 바뀌면 달라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때까지,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에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은 사람의 몫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삽 능력을 기르는 현실적 방법
“그래서 외삽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실용적인 질문이죠. 20년간 IT 현장에서 관찰한, 외삽을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정리해 봅니다.
1. 다른 분야를 ‘가볍게’ 경험한다
앞서 아마추어 무선 경험이 시스템 장애 진단에 도움이 된 사례를 말씀드렸죠. 외삽의 원료는 ‘현재 하는 일과 다른 도메인의 경험’입니다. 깊이 파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분야의 기본 개념과 사고 방식을 얕게라도 접하면, 그것이 아날로지의 재료가 됩니다.
2. ‘왜 안 되지?’보다 ‘왜 이게 당연하지?’를 묻는다
기존의 관행에 “왜?”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외삽의 문이 열립니다. “왜 로그인 화면이 항상 아이디/비밀번호 입력란이어야 하지?” “왜 장애 보고서는 항상 시간순이어야 하지?” 이런 질문들이 기존 패턴의 경계를 드러내고, 그 바깥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3. 실패를 기록하고 복기한다
성공에서는 보간을 배우고, 실패에서는 외삽을 배웁니다. “이 방향은 안 되더라”는 경험이 쌓여야, 다음에 새로운 방향을 상상할 때 어디를 피해야 하는지 감이 옵니다. 실패 일지를 따로 쓰는 습관은 외삽 능력의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4. AI의 보간 결과를 ‘당연하지 않다’는 눈으로 본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그대로 수용하면 사람도 보간에 갇힙니다. “AI가 이렇게 제안했는데, 정말 이 범위 안에서만 답이 있을까?”라는 의심이 외삽의 출발점입니다. AI의 답이 훌륭할수록, 그것이 커버하지 못하는 바깥을 의식적으로 찾는 습관이 중요해집니다.
금융IT 현장의 리얼: 보간과 외삽의 일상
제 일상을 예로 들어보면, 하루 업무의 시간 배분이 AI 도입 전후로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AI 도입 전:
- 보간적 작업(기존 패턴대로 코드 작성, 문서 정리, 테스트 케이스 나열): 70%
- 외삽적 작업(새로운 설계 방향 탐색, 비즈니스 문제 재정의, 기술 실험): 20%
- 커뮤니케이션 및 기타: 10%
AI 도입 후:
- 보간적 작업: 30% (AI가 초안을 만들고 사람이 검토·보정)
- 외삽적 작업: 45% (확보된 시간으로 더 많이 탐색)
- AI 협업 관리(프롬프트 설계, 결과 검증, 방향 재설정): 15%
- 커뮤니케이션 및 기타: 10%
이 변화가 가져온 체감 효과는 분명합니다. 예전에는 보간에 에너지를 쏟느라 외삽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거 더 좋은 방법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어도, 당장 눈앞의 코드를 완성해야 하니까 넘어갔죠. 이제는 AI가 보간을 빠르게 처리해주니까, 그 여유 시간에 “정말 이 방향이 맞나?”를 고민할 수 있게 됐습니다.
1화에서 “AI 도입했더니 더 바빠졌다”고 했던 거 기억하시죠? 그 바쁨의 상당 부분은 사실 외삽의 기회가 늘어난 것이었습니다. 보간에 쓰던 시간이 줄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거죠. 바빠진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의 성격이 바뀐 겁니다.
흔한 오해: “AI도 창의적이잖아요”
이 글에 반론을 제기할 분들을 위해, 자주 듣는 오해 세 가지에 답해보겠습니다.
“AI가 만든 그림/글이 예술 대회에서 상을 탔는데요?”
그 작품들을 분석해 보면, 기존 스타일과 기법의 정교한 조합입니다. 심사위원이 놀란 건 ‘기계가 이 수준의 조합을 해냈다’는 기술적 놀라움이지, ‘이전에 없던 예술 운동을 창시했다’는 의미의 창의가 아닙니다. 인상주의를 처음 시작한 화가들의 외삽과, 인상주의 스타일로 새 그림을 그리는 보간은 다른 차원의 행위입니다.
“AI가 수학 증명을 새로 발견했다면서요?”
AI가 기존 증명 기법들의 조합으로 새 경로를 찾아낸 사례는 있습니다. 대단한 성과죠. 하지만 “증명할 가치가 있는 새로운 추측을 세우는 것”은 여전히 인간 수학자의 몫입니다. 리만 가설을 처음 ‘떠올린’ 것과, 리만 가설의 증명을 ‘시도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창의입니다.
“그냥 충분히 큰 모델이면 외삽도 하는 거 아닌가요?”
모델이 커지면 보간의 공간이 넓어집니다. 더 많은 패턴을 담을 수 있으니, 이전보다 더 먼 거리의 점들 사이도 보간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외삽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학습 데이터의 분포 자체를 벗어나는 것과, 분포 안에서 더 정교하게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구분됩니다. 크기의 양적 확장이 질적 전환을 가져오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화의 핵심을 한 장의 그림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보간(Interpolation): 알려진 점들 사이를 채우는 것. AI의 강점. 패턴 조합, 최적화, 기존 스타일 적용.
- 외삽(Extrapolation): 알려진 범위 바깥으로 나가는 것. 사람의 영역. 새 질문 제기, 규칙 위반, 도메인 간 도약.
- 최적의 협업: 사람이 외삽으로 방향을 정하고 → AI가 보간으로 실행을 채우고 → 사람이 결과를 보고 다시 외삽.
AI 시대에 사람의 가치는 “보간을 더 빨리 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건 AI를 이길 수 없으니까요. 사람의 가치는 “아직 아무도 보간하지 않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에 있습니다.
다음 화 예고
보간과 외삽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가지 더 파고 싶은 주제가 떠올랐습니다. 외삽을 하려면 — 새로운 방향으로 뛰려면 — 기존의 것들을 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AI는 기존 지식을 절대 잊지 않습니다. 학습된 모든 패턴을 영구히 보존하죠. 그런데 인간의 ‘잊음’과 ‘놓아버림’이 오히려 창의와 적응의 조건이 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다음 10화에서는 “잊는 능력 — AI의 완벽한 기억이 오히려 한계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번 주 한 줄 노트: “AI가 채울 수 없는 빈칸은 없다. 하지만 어디에 빈칸을 뚫을지 결정하는 건, 아직 사람의 일이다.”
※ 본 글은 특정 기업·제품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개인 견해입니다.
이미지는 Leonardo AI 로 생성되었습니다.
이미지는 Claude AI 로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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